추천 도서2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단종, 세조 실록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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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급적 학생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을 먼저 추천하고 싶습니다.

그 두 번째 책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라고 하면 이름부터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모두 20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만화 형식이지만 내용의 밀도가 높고 분량도 적지 않아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전권을 읽으라고 권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조선왕조실록』 전 20권 중 고전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권을 중심으로, 학생들이 먼저 읽어 보면 좋을 부분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조선사에 대한 흥미가 생겨서 전권을 모두 읽게 된다면 더 좋겠죠.

가끔 학생들이 신하가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한 ‘충신연주지사’라는 제재에 대해 조선 시대 양반들이 실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묻곤 합니다. 그러면 종교와 관련된 이야기도 해주고, 당대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곤 합니다. 심지어 북한을 사례로 들기도 하죠. 왕조 국가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내면적으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든, 갖고 있지 않든 표면적으로는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게 평가받는다고 말입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죠.

앞서 『십팔사략』을 추천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역대 수능 문학 기출 목록을 갈래별로 분류해 보았는데, 고전시가·고전산문을 비롯해 고전수필·민속극 등 고전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항목은 모두 108개였습니다. 이 가운데 조선 시대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항목은 99개로, 전체의 약 90%를 살짝 넘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수능 고전문학의 대부분은 조선 시대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조선 시대의 작가와 사회,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고전문학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겠죠.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학생들 사이에 ‘단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었는데요.

생각보다 학생들이 단종과 관련된 이야기를 잘 모르고 있다는 점도 의외였지만, 이야기를 들려주자 상당한 흥미를 보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덕분에 단종과 관련된 고전시가 작품들과 ‘지조와 절개’가 제재인 작품들을 설명하기 수월해졌습니다.

단종은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의 아들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현덕왕후’가 죽고 할머니인 ‘소헌왕후’, 할아버지 ‘세종’, 아버지 ‘문종’까지 모두 죽은 뒤 불과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왕실에 후견인 역할을 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너무 어린 나이에 왕이 된 것이죠.

그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종의 삼촌인 ‘수양대군’은 ‘한명회’ 등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야심을 펼치게 됩니다. 그 유명한 ‘계유정난’도 이런 배경 속에 등장하게 됩니다. 뒤이어 단종의 선위와 수양대군의 즉위, 성삼문, 박팽년을 비롯한 충신들의 단종 복위 쿠데타의 실패 등등의 흥미로운 역사적 사건들이 전개됩니다.

여기서 앞서 십팔사략을 소개할 때도 언급했던 성삼문의 시조가 다시 등장합니다.

首陽山(수양산) 바라보며 이제(夷齊)를 恨(한)하노라.

주려 주글진들 採薇(채미)도 하난것가.

비록애 푸새엣 거신들 긔 뉘 따헤 낫나니.

집현전 학자 출신으로 끝까지 세종과 문종, 단종에 대한 충의를 지켰던 인물.

단종을 복위시키고자 계획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 고문을 당하는 중에도 끝내 그 절의를 꺾지 않았던 성삼문의 삶과 ‘십팔사략’에 실린 고사를 알면 이 시조의 의미도 더 분명히 이해될 것입니다.

박팽년의 시조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매라

야광명월(夜光明月)이 밤인들 어두우랴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고칠 줄이 있으랴

박팽년은 성삼문과 더불어 사육신의 한 명입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는 박팽년과 관련해 야사에 전하는 흥미로운 일화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단종 복위 쿠데타가 실패한 후 고문당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세조에게 올린 ‘장계(조선 시대에 신하가 임금에게 올리던 보고 문서)’에 臣(신-신하) 대신 巨(거-크다)를 써서 끝내 세조의 신하이기를 거부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의 생애를 이해하면 ‘까마귀’와 ‘야광명월’의 의미, 그리고 누구를 위한 일편단심인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신에 자주 언급되는 이개의 시조

방(房) 안에 혓는 촉(燭)불 눌과 이별(離別)하엿관데,

것츠로 눈물 디고 속타는 줄 모로는고

뎌 촉(燭)불 날과 갓트여 속 타는 줄 모로도다

일반적으로 시험에서는 ‘감정이입’이라는 표현법에 초점을 맞춘 문제들에 자주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방 안에 혓는 촉불 눌과 이별하였관대’ 라는 시구에서 ‘혓는’은 기본형 ‘혀다’로 현대 국어에서 ‘켜다’에 대응하는 단어로 ‘불을 켜다’의 의미입니다. ‘청산별곡’에도 이 단어가 ‘해금 혀거를 들어라’로 등장하는데 현대 국어에서 ‘바이올린을 켜다’처럼 악기를 ‘연주하다’의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그리고 ‘눌’은 현대국어에서 ‘누구’의 의미입니다. ‘날, 널, 눌’은 각각 ‘나, 너, 누구’와 대응됩니다.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의 삶을 이해한다면 ‘눌’이 누구인지, 이 작품이 왜 감정이입이라는 표현법의 대표적인 시조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밖에 ‘간밤에 불던 바람 눈서리 치단 말가’로 시작하는 유응부의 시조, 그리고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임 여의옵고’로 시작하는 왕방연의 시조 등, 단종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여러 작품이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을 쓴 인물들의 삶과 그 속에 담긴 정서와 태도를 이해하는 데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습니다.

고전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조선의 역사를 모두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교과서와 문제집에서 각각의 작품으로 만났던 성삼문, 박팽년, 이개, 왕방연 등의 작품이 사실은 하나의 역사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도 조금 달라집니다. 작품의 주제와 표현법을 외우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작품을 창작했는지, 왜 그런 정서를 드러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고전문학을 조금 더 재미있고 깊이 있게 읽고 싶은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